즐겁게 살기가 뭔가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든다.

즐겁게 살아가기.

원하는 것을 하고 먹고 사고 듣고 누리며 사는 행복.

즐겁게 산다는게 어떤건지 잊어버린지 (혹은 잃어버린지) 오래인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

극소수의 깊은 관계를 가진 지인들과의 음주가무 및 라이브 공연 관람이었던 내가,

가끔 게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행복 중 하나였는데

이젠 그 어떤걸 해도 행복하단 기분이 들질 않는다.


금전적인 이유도 아니고,

시간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없어진 것도 아닌데

도대체 '아 존나 행복하다' 라는 기분을 가져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인간의 마음에 욕심이라는 놈이 자리잡으면 행복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그런데 타고난 천성이 느리고 게을러터진, 안일하고 나태한 나같은 인간이

갑자기 무언가에 욕심을 가질리도 만무하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다.


아마도,

글쟁이 생활 10년차에 들어서면서 부터인 것 같다.


22살인가, 23살인가...

내 글은 글자당 10원에 팔렸다.

요즘은 글자당으로 원고료를 책정하는 드럽고 치사한 방식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엔 그랬다.

글자당 10원... 혹은 20원.

그때 몸에 익은 드러운 습관 중에 하나가 쓸데없이 문장 늘려서 돈받아먹기.

원고를 쓰면서도 참... 이게 사기꾼이 되어가나 싶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얼마 되지도 않는 몇푼 받아 챙겨서 연명하듯 허덕이며 글을 써댔다.

중간에 좋은 직장 들어가 돈 좀 만지긴 했지만,

들어온 복을 차버리는 습성, 또 글쓰겠다고 골방에 틀어박혔다.


세월도 좋아져서 이젠 페이지당 원고료를 주기도 하고

허덕이는건 여전했지만 워낙 치사한 환경에서 글쓰던 습성이 있어서

그정도도 황송했다.


그렇게 10년, 파릇하던 나란 인간도 서른줄을 훌쩍 넘어,

이젠 꼴에 '얼마 이상 안주면 안쓴다'라고 튕길 주제도 되고..

그렇게 10년,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행복이 없어졌다.

조급함이라고 해야하나.

잉여짓하는건 여전한데 예전엔 잉여짓하면서 정신놓고 노는 것도 과정이라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이젠 잉여짓하며 노는 시간이 아까워서 사망하시겠다.

뭐 원래 시간을 허투로 쓰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기는 했었지만

요즘처럼 강박증이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뭔가 이뤄놓은 것이 없다는 불안함.

한 분야에 10년이면, 그만 거둬들일 것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다.

단행본 몇권, 엎어진 시나리오 몇개.

연재하던 잡지들, 기고한 단편들, 남의 인생 읊어준 자서전에 온갖 쪽글들..

도대체 내가 어디다 썼는지 그것조차도 기억할 수가 없다.

수없이 써서 원고료만 받아먹었지..


그럴바엔 아예 계속 프리랜서로 가면 될걸 그건 또 아니거든.

내 작품 쓰면서 살기 위해 시작한 프리랜서라는 일이, 돈벌이 글이,

그게 내가 이뤄놓은 전부가 되었다.


전형적인 생계형 글쟁이.


이젠 그 짓 좀 그만하려고 하는데

아..........


파릇하던 나의 청춘, 나의 무모함, 나의 오기, 나의 빠릿빠릿하던 총기.

그게 어느덧 사라지고 없구나.


그게 내 행복을 갉아먹는 원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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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난 왜그리 진심이 없어?"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2년여를 사귀었던 애인과 헤어진 후 모임에 나갔을때, 친하게 지내는 동생이 한 질문.

 

"그럼 무얼 바란게냐? 질질 짜면서 술이라도 벌컥벌컥 마셔주길 바란게냐?"

 

요즘같이 금방 만나고 금방 헤어지는 세상에서 2년이라면 나름 오래 사귄 사람일진데 그런 사람과 헤어진지 일주일도 안되서 웃고 즐기고 놀 수가 있느냐... 뭐 이런 의미였다. 누가 먼저 찼느냐, 차였느냐의 문제를 떠나 '이별'이라는 크나큰 사건(!)을 겪은 여인으로써 좀 더 차분하고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 걸까.

 

이미 서로의 합의하에 두 사람이 헤어졌다. 감정의 정리는 빨라야 하고 이별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자세 중 눈물은 바보스럽다. 그 사람은 그가 가야할 길로 난 내가 가야할 길로 각자 떠났다. 무엇이 더 남을건가. 사람을 만나고 감정을 쌓고 사랑하는 동안, 그 기간동안의 정성과 배려, 애틋함.. 그 기간동안만 충실하면 된 것 아닌가. 인연을 정리하는데에도 순서가 있고 예의가 있다고 한다. 그게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한 후 그 추억을 더듬어보고 회상하며 마치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루는 것 처럼 엄숙해야만 하는 것일까.

 

담백하게 사랑했고 이별 후 감정의 잔재가 남지 않을만큼 깨끗하게 털어부어주었다. 이별 후 남은 감정의 부스러기들이 없기 때문에 채워넣을 공간만이 남았다. 슬프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좀 더 진지한 이별의식을 해야만 했을까.

 

언젠가 사랑은 영원하다, 사랑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등등의 순정에 대한 동경을 한 시기가 있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생겨버렸는데 그 이후 다른 사람이 마음에 들어오거나 생각하게 되는건 너무나 부끄러운 짓이라며 억지로 이미 닳아빠진 나의 감정을 붙잡고 매달렸었다. 첫사랑과 이별한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였는데 말이다.

 

난 새로운 사랑에 패배했다. 내가 동경하던 그 단 한번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결국 새로운 사랑에 무릎꿇고 사라져버렸다. 난 나 자신을 자책했다. 부끄럽고 한심했고 어리석게 여겼었다. 어떻게... 어떻게 내가 진심이라 느끼는 사랑이 둘이나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난 진심도 순정도 없는 그런 아이였단 말인가...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2번째 사랑은 3번째 사랑에게 무릎을 꿇었다.

 

예상치 못하게 거듭되는 감정의 변화를 겪을때마다 난 괴로워해야했고 드라마나 영화 혹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아주 유치한 멘트로 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미안해,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 정말 미안해..."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마치 대단하게 큰 배반이라도 한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내가 내뱉은 이별에 괴로워하며 앞서 말한 이별의 의식을 단단히 치뤄댔다. 마치 그렇게라도 해야만 내 같잖은 죄책감이 줄어들 것만 같은 기분?

 

그런데 어느 해인가, 어느 날인가.... 단단한 눈빛과 그보다 더 단단한 심장을 가진 이를 만나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어지간히도 가슴앓이를 했다. 생과 사를 오가는 고통을 겪으며 사랑했다. 병이 왔고 원형탈모에 머리가 하얗게 새었고(실제로 새치가 엄청나게 났다-_-) 눈물을 흘릴 기력조차 내겐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사랑을 하였다. 내가 숨쉴 수 있을만큼의 기력만 남겨놓고 쏟아부었다.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하고 싶지 않을만큼의 진절머리나는 사랑이었다. 그렇게 난 하루하루 죽어갔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뜸과 동시에 읊조렸다.

 

"그만해도 되겠다...."

 

그리고 이별을 고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죽는 것 보단 낫군..."

 

그랬다. 죽는 것 보단 나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내 심장은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렇게하면 되는구나... 매 순간 충실히 사랑하고 줄 수 있는만큼의 사랑을 모두 털어부으면 이별 후에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있구나. 죄책감 따위 갖지 않아도 되는구나....

 

누가 먼저 헤어짐을 고하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동안 얼마나 후회없이 사랑하였느냐가 중요한 것이구나 라는 것. 남김없이 쏟은 후에, 더이상 남은 것이 없을때엔 헤어져도 괜찮은 것이구나.. 라고.

 

내 기억속 마지막 이별을 했던 그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해주지 못한게 너무 많은데 미안해서 잡지도 못하겠다... 잡아도 떠나겠지만 부디 아프지 말고 나보다 좋은 남자 만나.."

 

이미 난 괜찮았다. 내 사랑이 진실했음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사랑했음을 그도 알고 나도 알았기에 우리의 이별은 담백했고 간결했다. 죄책감이나 속죄의 의식없이도 이별은 가능했다.

 

연인을 저울질하는 이들이여, 먼저 차야하나, 차여야 하나와 같은 어줍잖은 고민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돌아보라. 후회없이 사랑하였는지. 몇년 후 낯선 거리에서 그(그녀)를 만났을때 미안하지 않을만큼 사랑하였다면 그만 놓아주어도 된다. 죄책감없이 고갈된 사랑을 아쉬워하는 정도의 이별이면 된다.

 

남김없이 사랑하자, 모두가 두려워하는 이별 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음악을 들으면서 달그락 달그락 설겆이를 하다,

문득 눈물 한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내 방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Art Garfunkel의 Traveling Boy...

그 장면이 떠올랐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루마니아로 떠난 프란체스카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그들을 그리워하며

다시 초라하고 외로워진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가야 했던 두일이.

온기가 사라진 식탁, 무의미한 퇴근길, 웃음이 사라진 얼굴.


그리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어느 저녁,

두일이 앞에 다시 나타난 프란체스카.

말없이 바라보는 둘의 눈빛.

그때 흐르던 곡.




난 이 작품으로 많은 위안을 얻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곤궁한 삶에 빠져버렸던 그 시기.

경험도, 경력도 전무했기에

하나하나 쌓아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모르는 것을 물어볼 곳도,

작은 결정 하나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었던,

그때만 해도 어지간히 피워댔던 그 담배값조차도 없었던 시절.

유일하게 나를 웃게 해준 것이 <안녕, 프란체스카>였다.

대한민국 방송에서 저런 이야기도 만들 수 있구나.. 

저 산만한 캐릭터들을 저렇게 버무려도 이야기가 되는구나..

유치하고 요란하게 살아대는 저들의 모습에서 이런 페이소스를 뽑아낼 수도 있구나.. 


그렇게 신정구 작가를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인진 모르지만

내가 살면서 한번쯤은 꼭 그와 같은 이야기를 써보리라..

언젠가 한번은 꼭 만나서 <안녕, 프란체스카>를 탄생시킨 배경을 물어보리라,

꼭 한번 같이 작품을 해보리라...

그리고 지쳐 널부러진 나에게 웃음과 희망을 줘서 고맙다고 꼭 말하리라.. 그렇게 다짐했었다.


시간은 흘렀고

프란체스카 시즌1과 2가 끝나고 꽤 낯선 느낌의 시즌 3까지.

신정구 작가가 손을 놓고 나서도 

그가 터를 다져놓은 작품에 대한 의리로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렇게 <안녕, 프란체스카>의 모든 시즌이 끝나고 

꽤 오랜 시간이 다시 흐르고

나는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글쟁이가 되어있었다.

물론 수입적인 면에서 일반 직장인들의 월급에는 못미치지만

쉬지않고 일했기에

내가 일을 선별해서 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

가끔 일이 안풀리거나 늘어져 있을때면

하드 구석에 보관하고 있던 에피소드 하나씩을 꺼내보며 다시 기운을 냈다.




그리고.. 2011년,

그가 <선녀가 필요해>라는 작품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간 여러 작품을 집필하긴 했지만 <선녀가 필요해>는 촉이 섰다.

프란체스카 심혜진에 두일이 이두일, 그리고 안성댁 박희진까지!!

이건 부활이다!

<안녕, 프란체스카>가 돌아온다!

그때의 벅찬 심정은 정말이지..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받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매일 기사를 검색하며 첫 방영 날짜만 기다렸고 그의 대사와 캐릭터에서 느꼈던 짜릿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 애가 탔다.




2011년 11월 27일 아침.

작업실에 도착해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기사를 검색하던 중..

그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간경화였단다.

대구에 계신 어머님께 수상의 기쁨을 바치고 싶다더니

그의 고향인 대구에서 많지도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단다.


헛헛했다.


그의 병이, 눈물젖은 수제비를 먹던 그 시절에 생긴 병인지,

기나긴 밤 술병을 쌓아가며 작품을 고민하면서 만든 병인지,

그건 나도 모른다.

그저 미루어 짐작으로만,

어찌되었건,

작가는 하루하루 제 몸을 갉아먹으며 

내가 웃고 울며 사랑했던 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그리고 오늘,

한곡의 음악으로 

난 다시 몇 년 전 그 시절,

먼지쌓인 자취방에 홀로 앉은 스물 여섯의 내가 됐다.

프란체스카와 두일이, 왕고모, 바보켠이, 예쁜엘리, 앙드레 대교주, 안성댁.

정극 드라마보다 더 진한 여운을 남긴 <안녕, 프란체스카>

그들을 만들어낸 신정구 작가가 생각나 부질없는 그리움을 훌쩍였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동경.


하늘에서 만난 이들에게도 두근두근 설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길.

평생 대표작 하나 없이 잡글만 쓰다 가는 작가도 많은데

제 이름 건 작품 하나 내놓지 못하고 가는 작가는 더 많은데

누구나 '재밌었다!'라고 할만한 작품 하나 남기고 가셨으니

그것도 뿌듯해할만 하지요?


나는 

작가님의 글을

참 좋아했습니다.





메인테마였던 study in a minor



그들의 곤궁함이 절정에 이를때면 들려오던 grosse femme






네이버 캐스트 - [에세이 산책] 신정구 작가의 '눈물 젖은 수제비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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