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들으면서 달그락 달그락 설겆이를 하다,
문득 눈물 한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내 방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Art Garfunkel의 Traveling Boy...
그 장면이 떠올랐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루마니아로 떠난 프란체스카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그들을 그리워하며
다시 초라하고 외로워진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가야 했던 두일이.
온기가 사라진 식탁, 무의미한 퇴근길, 웃음이 사라진 얼굴.
그리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어느 저녁,
두일이 앞에 다시 나타난 프란체스카.
말없이 바라보는 둘의 눈빛.
그때 흐르던 곡.
난 이 작품으로 많은 위안을 얻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곤궁한 삶에 빠져버렸던 그 시기.
경험도, 경력도 전무했기에
하나하나 쌓아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모르는 것을 물어볼 곳도,
작은 결정 하나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었던,
그때만 해도 어지간히 피워댔던 그 담배값조차도 없었던 시절.
유일하게 나를 웃게 해준 것이 <안녕, 프란체스카>였다.
대한민국 방송에서 저런 이야기도 만들 수 있구나..
저 산만한 캐릭터들을 저렇게 버무려도 이야기가 되는구나..
유치하고 요란하게 살아대는 저들의 모습에서 이런 페이소스를 뽑아낼 수도 있구나..
그렇게 신정구 작가를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인진 모르지만
내가 살면서 한번쯤은 꼭 그와 같은 이야기를 써보리라..
언젠가 한번은 꼭 만나서 <안녕, 프란체스카>를 탄생시킨 배경을 물어보리라,
꼭 한번 같이 작품을 해보리라...
그리고 지쳐 널부러진 나에게 웃음과 희망을 줘서 고맙다고 꼭 말하리라.. 그렇게 다짐했었다.
시간은 흘렀고
프란체스카 시즌1과 2가 끝나고 꽤 낯선 느낌의 시즌 3까지.
신정구 작가가 손을 놓고 나서도
그가 터를 다져놓은 작품에 대한 의리로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렇게 <안녕, 프란체스카>의 모든 시즌이 끝나고
꽤 오랜 시간이 다시 흐르고
나는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글쟁이가 되어있었다.
물론 수입적인 면에서 일반 직장인들의 월급에는 못미치지만
쉬지않고 일했기에
내가 일을 선별해서 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
가끔 일이 안풀리거나 늘어져 있을때면
하드 구석에 보관하고 있던 에피소드 하나씩을 꺼내보며 다시 기운을 냈다.
그리고.. 2011년,
그가 <선녀가 필요해>라는 작품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간 여러 작품을 집필하긴 했지만 <선녀가 필요해>는 촉이 섰다.
프란체스카 심혜진에 두일이 이두일, 그리고 안성댁 박희진까지!!
이건 부활이다!
<안녕, 프란체스카>가 돌아온다!
그때의 벅찬 심정은 정말이지..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받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매일 기사를 검색하며 첫 방영 날짜만 기다렸고 그의 대사와 캐릭터에서 느꼈던 짜릿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 애가 탔다.
2011년 11월 27일 아침.
작업실에 도착해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기사를 검색하던 중..
그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간경화였단다.
대구에 계신 어머님께 수상의 기쁨을 바치고 싶다더니
그의 고향인 대구에서 많지도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단다.
헛헛했다.
그의 병이, 눈물젖은 수제비를 먹던 그 시절에 생긴 병인지,
기나긴 밤 술병을 쌓아가며 작품을 고민하면서 만든 병인지,
그건 나도 모른다.
그저 미루어 짐작으로만,
어찌되었건,
작가는 하루하루 제 몸을 갉아먹으며
내가 웃고 울며 사랑했던 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그리고 오늘,
한곡의 음악으로
난 다시 몇 년 전 그 시절,
먼지쌓인 자취방에 홀로 앉은 스물 여섯의 내가 됐다.
프란체스카와 두일이, 왕고모, 바보켠이, 예쁜엘리, 앙드레 대교주, 안성댁.
정극 드라마보다 더 진한 여운을 남긴 <안녕, 프란체스카>
그들을 만들어낸 신정구 작가가 생각나 부질없는 그리움을 훌쩍였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동경.
하늘에서 만난 이들에게도 두근두근 설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길.
평생 대표작 하나 없이 잡글만 쓰다 가는 작가도 많은데
제 이름 건 작품 하나 내놓지 못하고 가는 작가는 더 많은데
누구나 '재밌었다!'라고 할만한 작품 하나 남기고 가셨으니
그것도 뿌듯해할만 하지요?
나는
작가님의 글을
참 좋아했습니다.
메인테마였던 study in a minor
그들의 곤궁함이 절정에 이를때면 들려오던 grosse fe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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